권근 저술은 조선의 관학에서 기본 교재

저술은 조선의 관학에서 기본 교재로 쓰이며 수백 년간 후학들에게 영향을 주었어요. 권근은 태조 이성계와도 깊은 인연을 맺었는데, 그는 조선 개국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유교적 통치를 위한 이념적 토대를 마련 하는데 기여 했어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질 당시 그는 이성계의 정치적 정통성을 인정하는 입장을 취하며 신생 왕조의 정당성을 성리학적으로 해석 했어요. 정도전이 불교 배척과 유교 중심 국가를 설계할 때, 권근 역시 이에 동조하며 불교를 비판하고 유교의 제례와 윤리를 강조하는 글을 남겼어요. 특히 불씨잡변 에 대한 비판서인 대학연의보주 에서 불교의 허황됨을 지적하며 유교의 우월함을 논증 했어요. 또한 그는 교육 제도의 확립에도 주력하여, 성균관을 중심으로 한 유교 교육 체계를 정비하고, 지방의 향교와 서당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였어요. 그의 교육 철학은 인성의 함양과 경전의 학습을 조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이는 조선 전기 교육의 기본 방향으로 자리 잡았어요. 관직으로는 대사헌, 예문관 대제학, 지춘추관사 등을 지냈고 사헌부를 이끌며 언론의 기능을 강화하고 도덕 정치를 실현하려 노력했어요. 권근은 말년에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1409년 향년 58세로 생을 마감 했어요. 사후 문헌공에 추증되었고, 문묘에 배향되어 유교 사상가로서의 업적을 높이 평가받고 있어요. 그의 대표 저술로는 양촌집 입학도설 심경부주 대학연의보주 등이 있는데 이들 저작은 조선 성리학의 기초 이론과 교육 교재로 오랫동안 사용 되었어요.